다문화 20대 청년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2006년 3월 30일, 국가청소년위원회가 주최한  ‘다문화가정 청소년 사회적응 실태 및 지원방안 토론회’에 참석해 국민의례를 하고 있는  ‘혼혈 청소년’들. / 국가기록원

2006년 3월 30일, 국가청소년위원회가 주최한 ‘다문화가정 청소년 사회적응 실태 및 지원방안 토론회’에 참석해 국민의례를 하고 있는 ‘혼혈 청소년’들. / 국가기록원

·2009년 16~18세는 6884명, 25세 넘으면 조사대상서 빠져 현재 모습 알 길 없어

여기 두 장의 사진이 있다. 국가기록원에서 ‘다문화’로 검색했을 때 가장 오래된 자료로 검색되는 것이다. 한 장은 평범한 행사 기록사진이다. 현재는 여성가족부로 통합된 국가청소년위원회가 2006년 3월 30일 연 ‘다문화가정 청소년 사회적응실태 및 지원방안 토론회’라고 플래카드에는 적혀 있다. 기자의 주목을 끈 건 두 번째 사진이다. 위 행사에 참석한 1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청소년들 사진이다. ‘국민의례’라고만 사진설명엔 적혀 있다. 위 행사의 부제는 이것이다. ‘혼혈청소년도 당당한 한국인입니다.’

올해가 2018년이니 12년의 세월이 흘렀다. 행사에 참여한 저 ‘혼혈청소년’들이 15세가량이었다면 올해 27세 전후다. 남자아이라면 군대를 다녀오고 사회에 진출할 나이다.(2010년 병역법이 개정돼 1992년 1월 1일 이후 출생이면서 한국 국적을 가진 모든 혼혈인은 외모나 인종, 피부색과 상관없이 현역으로 병역의무를 이행하도록 변경되었다.) 이 아이들은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할까.

“글쎄요. 저도 그 20대들이 현재 어떤 모습으로 있을지 떠오르지 않네요.” 여성가족부 산하 정책연구기관인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서 다문화 연구를 총괄하고 있는 김이선 박사의 말이다. 그가 말한 그 20대는 이제는 성년이 되었을 ‘다문화 2세 청년들’을 말한다. 

차별 반대로 시작한 ‘다문화’ 호칭 

먼저 전제해야 할 것이 있다. ‘다문화’라는 말은 언제부터 국제결혼 내지는 혼혈가족을 대신하는 말로 쓰이게 된 것일까. 언론 보도를 찾아보면 2003년 12월 손봉호 당시 한성대학교 이사장, 옥한흠 사랑의교회 목사, 김우식 연세대 총장, 김근태·김덕룡 의원 등 교육계·종교계·정계 인사 77명이 ‘혼혈인 차별철폐 시민운동’을 벌이겠다고 기자회견을 연 소식이 나온다. 보도에 따르면 송길원 하이패밀리 대표가 “당장 언어생활에서 ‘국제결혼’ ‘혼혈아’ 등의 차별적 용어를 추방하는 대신 ‘다문화가족’(국제결혼가족), ‘다문화가족 2세’(혼혈인)로 부르자고 이 날 제안했다”고 나온다. 다문화라는 말이 널리 퍼진 것은 이 시점, 그러니까 2003년 내지 2004년 전후로 추정된다. 이때까지 다문화가족에 대한 제대로 된 통계나 사회조사가 이뤄진 적이 없다. 

다문화가족, 범위를 좁혀서 다문화 2세의 규모를 유추해볼 만한 자료는 있다. 행정안전부의 외국인주민 현황조사다. 2007년부터 집계된 것으로 되어 있다. 물론 2007년 이전에 다문화가족 2세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조사되지 않았을 뿐이다. 표를 보다보면 2007년 4만4258명이었던 자녀들은 불과 2년 후인 2009년 10만7689명으로 대폭 증가한다. 이 역시 갑자기 다문화가정의 결혼이나 출산이 늘어난 것이 아니다. 2009년부터 결혼 이민자 배우자 정보를 활용해 조사하면서 파악된 숫자가 늘어난 것이다. 따라서 어느 정도 실체에 근접한 조사가 이뤄진 것은 2009년부터로 볼 수 있다. 눈에 띄는 것은 2009년도 조사에서 만 16~18세 사이로 언급되었던 6884명이다. 내년이면 그 후 10년이다. 앞서 국가청소년위원회 토론회에 참여한 다문화 청소년들과 마찬가지로, 현재 나이는 26~28세로 추정된다. 역시 사회에 다 진출했을 걸로 추정된다. 이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다문화가정 실태조사는 2008년 제정된 다문화가족지원법에 근거해 매 3년마다 이뤄진다. 그런데 이제 사회에 진출한 다문화 청년, 25세 이상에 대한 통계나 자료, 실태조사는 없다. 이유는 단순하다. 같은 법에서 지원대상을 결혼 이민자와 아동·청소년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에서 아동·청소년은 ‘24세 이하인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다. 25세 이상으로 사회에 진출한 다문화 2세 청년, 그리고 초기에 국적을 취득한 가정 출신으로 3세까지 나온 것으로 추정되는 가족은 지원대상에서 제외된다. 따라서 실태조사도 없는 것이다. 김 박사가 “현재 모습을 알 수 없다”고 말한 까닭이다.

25세 이상 다문화 청년의 현 실태를 추정할 수 있는 연구나 자료는 있다. 다문화 청소년과 비(非)다문화 청소년의 가족생활, 진학, 취업 등 경제활동 비교연구다. 연구에 따르면 다문화 청소년 내에서도 차이가 있다. 이주배경 청소년지원재단이 지난 2016년 수행한 ‘이주배경 청소년정책 중장기 발전방안 연구’ 논문에 따르면 국내 성장 다문화 청소년·중도입국 다문화 청소년·이주노동자 자녀 사이에서도 각각의 영역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뒤로 갈수록 열악하다. 특성에 따라 각각 다른 지원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문화 20대 청년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성년이 된 다문화 2세의 ‘실종’ 

청소년 시기의 차이는 이들이 25세 이상 성년이 된 뒤에도 지속되는 것일까. “관련 지원기관에 부탁해 얻을 수 있는 사례는 그나마 성공적인 케이스일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다문화 청소년이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대학교에 진학하기는 어려워요.” 안산이주민지원센터 대표를 맡고 있는 박천응 목사의 말이다. ‘다문화 전형’이라는 것이 있지만 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청소년은 소수에 불과하다. “사실 그건 그냥 보통 한국인 학생들도 마찬가지인데, 강남이나 수도권 신도시처럼 교육환경이 좋은 곳이 있고 빈민 밀집지역이나 농촌지역은 공부를 잘하기 힘들죠. 국제결혼 가족의 약 70%가 빈민가정입니다. 한쪽 부모는 한국말이 안 되니 어렸을 때부터 학습지도가 안 돼요. 둘째로 경제적 능력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학등록금이 한 500만원하는데 그 돈이 어디 있습니까. 먹고살 것도 안 되는데. 결국 대학을 갈 수 있는 능력이 되어도 취업해야겠다가 되는 거죠. 그러면 취업은 잘되냐. 현실적으로 4년제 대학 출신도 안 되는데 그게 쉽겠습니까. 공장을 간다는 것도 또 오래 버티질 못합니다. 그래서 그냥 룸펜처럼 지내는 겁니다. 한국에서는 여기서 나고 자란 아이들이 청년이 되어서 치고 올라오는 사례가 적기 때문에 현재는 사회문제가 안 되고 있는데 앞으로 몇 년 후면 어떻게 될지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유럽에서 나고 자란 다문화 2세, 3세들이 왕따를 경험하고 실업상태로 방치되면서 사회문제화된 것을 우리도 경험할 수 있다는 말이다. 

박 대표는 안산·반월공단에 모여드는 이주노동자 사역을 하면서 초창기부터 다문화 역사를 목격하고 인권운동을 벌여온, 말하자면 산 증인이다. “제 경험으로는 지금 20대는 아직 문제될 것이 없어요. 인원도 소수이고. 주목해야 하는 것은 2004년 전후에 태어난 현재 13∼15세 애들입니다. 이때를 전후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잘 봐야 합니다. 한국과 중국이 결혼 자율화 MOU를 맺습니다. 이것을 비즈니스적 관점에서 보면 국제결혼 시장의 위기입니다. 결혼 중개업자들의 입장에선 이제 자기들끼리 알아서 하게 되었으니 고객이 사라진 것이거든요. 그래서 이 사람들이 취한 게 동남아로의 진출입니다.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같은. ‘돈으로 팔려오는 신부들’이 나타난 거죠.” 13∼15세, 그러니까 현재 중학교 2학년 전후의 다문화세대들은 다문화 밀집지역을 중심으로 강한 ‘동류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박 대표의 진단이다. “안산의 한 초등학교는 현재 전체 학생의 절반 정도가 다문화입니다. 다른 초등학교의 경우엔 그 비율이 70%까지 올라가요. 바깥에서는 자기 아이는 이 학교로 안 보내려 합니다. 학교 자체가 왕따를 당하는 거예요. 지방에선 이주민 밀집지역이 아닌 곳에서도 10% 정도, 그러니까 열 명 중 한 명은 다문화 배경 아이들입니다. 이 아이들을 어떻게 할 것이냐가 중요하죠.”

“한국의 다문화정책을 돌이켜본다면 모델이나 지향점을 생각하기엔 너무나 역사가 없어요.” 김이선 박사의 말이다. “그나마 사회적 영향을 가져온 것이 다문화가족이라는 말을 만들고 지원센터를 만든 것인데, 사실 다문화라는 범주화 자체가 이중성이 있지 않습니까. 한국 사회에서 ‘다문화’라는 말이 임파워먼트, 그러니까 이주민들이 자기네 정체성을 찾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 외부에서 낙인 찍는 방식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다문화가 아닌 사람이 온정을 베풀어야 하는 대상 식으로 사실상 차별의 대상으로 범주화된 거죠.” 그는 더 따지고 들어가보면 물밑에서 작동하는 ‘다문화의 정치’가 있다고 덧붙였다. 양쪽의 언어와 문화를 이해하면서 두 나라의 가교 역할을 하는 글로벌 인적 자원으로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한다는 것이 다문화주의의 긍정성을 설파하는 논리다.

하지만 그건 이상적인 이야기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실제 국제결혼 자녀의 경우 한국어든 부모 출신 나라 언어든 어느 쪽이나 모두 언어 발달이 느린 경우가 많아 관련 지원책이 마련되고 있다. 그런데 김 박사에 따르면 그게 출신 나라에 따라 다르다는 것이다. 중국이나 일본, 필리핀보다 베트남, 캄보디아, 네팔 같은 동남아 다문화가정의 언어 발달이 더 느린 경우가 많다. 국가의 위계가 바로 다문화 담론의 배후에서 결정되는 논리다. “까놓고 말하자면 한국보다 잘사는 나라냐, 아니면 못사는 나라로 인식되느냐에 따라 다른 거죠. 엊그제 TV를 보니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축구선수 박주호씨의 스위스인 부인이 여러 나라 말을 한다고 하는데 딸도 4개 국어인가 한다고 하잖아요. 그 프로에 보면 호주 출신 샘 해밍턴 가족도 나옵니다. 누가 저런 사람들을 다문화가족이라고 떠올릴까요. 그 사람들이 다문화가정지원센터의 지원대상이라고 하면 아마 본인들도 당황하고 시청자도 당황할 겁니다. 왜냐, 다문화가족은 못살아야 하니까요.” 

다문화가족의 청소년과 국내로 이주해 사회적응 및 학업 수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인 이주배경 청소년들이 충남 천안 국립중앙청소년수련원에서 열린 ‘통·통·통’ 캠프에 참가해 일반 청소년들과 함께 어깨동무를 하며 서먹서먹함을 깨는 시간을 갖고 있다. / 이상훈 선임기자

다문화가족의 청소년과 국내로 이주해 사회적응 및 학업 수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인 이주배경 청소년들이 충남 천안 국립중앙청소년수련원에서 열린 ‘통·통·통’ 캠프에 참가해 일반 청소년들과 함께 어깨동무를 하며 서먹서먹함을 깨는 시간을 갖고 있다. / 이상훈 선임기자 


‘다문화가족’이라는 고정관념 

경제사정이 달라지면서 이 국가의 위계에도 변동이 생긴다. 몽골 출신인 벗드갈씨(26)는 2009년에 한국으로 유학을 왔다 한국인 남편을 만나 결혼한 결혼 이주민이다. “그때 만났던 중국 친구들은 되도록 한국에 남아서 취업하고 싶어했어요. 그런데 2~3년 전부터 중국 유학생들은 돌아갔어요. 중국 경제가 좋아지니 남을 필요가 없는 거죠. 베트남도 성장 가능성이 있습니다. 지금보다 잘살게 되면 한국으로 건너온 베트남 출신 결혼 이주민 여성들의 지위도 올라가겠죠. 그런데 한국사람들의 생각은 쉽게 안 바뀝니다. 일본사람들이 식민지배 경험이 있으니까 한국사람들을 속으로 낮게 보는 것처럼 과거의 베트남 이런 것 떠올리며 내려다보는 것 같습니다. 10년 후에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데 한국사람들의 편견은 쉽게 바뀌지 않는 것 같아요.” 

그는 자신과 같은 2009년 이후 여성 결혼 이주민도 ‘사각지대’라고 했다. “2016년도 자료를 보면 2000년 전후로 결혼 이주민 가정이 급증했습니다. 그러다 2009~2010년께부터 급증세가 멈췄습니다. 결혼중개업체가 망하기 시작하면서 그 이후 결혼은 연애결혼이 많아요. 즉 돈 주고 신부를 사는 사람들은 사라지고 대부분 연애결혼해서 온 것인데 여전히 낮춰보고 취업기회도 거의 없습니다. 제 친구들도 보면 대학 졸업한 친구들이 대부분인데 받아주는 데가 없어요. 지원센터 교육도 바리스타처럼 천편일률적이고.” 그는 “결혼 이주민을 장애인이나 한부모가정처럼 취약계층으로 분류해놓고 왜 지원은 다른 취약계층보다 적냐”고 반문한다. “다문화지원센터 같은 곳도 그렇습니다. 거기에서 일하는 친구 말을 들어보니 결혼 이주민은 거기에서도 왕따를 당한대요. 다문화 지원을 하겠다는 조직인데 거기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 대부분은 이제 막 대학 졸업한 한국친구들입니다. 외국인 아줌마가 오는 것이 싫을 수 있어요. 거꾸로 이렇게 말할 수 있어요. 걔네들이 애를 키워봤나 직접 경험을 해봤나. 다문화가정을 지원한다고 하면서 취업은 왜 한국사람 위주로 합니까.” 현재 서울시립대 행정학과 대학원에서 ‘서울시의 결혼이주여성 취업정책’에 대한 논문을 준비 중인 벗드갈씨는 지원시스템뿐 아니라 학계도 당사자를 배제한 ‘그들만의 리그’로 돌아간다고 주장했다. 

다문화 20대 청년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MB정부, 왜 다문화에 올인했을까 

사실 의아한 부분은 현재의 다문화정책의 핵심 골간은 진보정부가 아닌 이명박 정부, 보수정부 시절에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한 다문화가족지원법이 만들어지고, 5년마다 작성하게 되어 있는 다문화가족 지원 기본계획이 실시되고, 다문화정책위원회 설치가 법에 명시된 것도 MB정부 시절이었다. 미국에 거주하는 강미옥 박사는 2014년에 낸 책 <보수는 왜 다문화를 선택했는가>라는 책에서 보수가 현재의 온정주의적 시혜를 특징으로 하는 다문화 담론 논리를 적극 만들어냈다고 주장한다. 보수는 한국 사회의 타자에 대한 차별과 소외를 감추고 보수매체들을 활용해 미담을 부각시키는 전략을 택했는데, 그 과정에서 외국인도 좋아하는 우월한 한국인, 한국어, 한국문화라는 우파적 관점의 민족주의가 다문화주의 담론과 함께 주류로 자리잡았다. 진보는 주류사회의 어두운 단면에 비판적으로 접근해 해결점을 찾자는 논의가 주류였는데 그 과정에서 ‘가난하고 소외된 우리’ 이주민에게 ‘뭔가 해주는 정부’라는 보수우파의 다문화정책 담론에 주도권을 뺏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결국 좌절되었지만 MB정부 말기에는 이민청 설립 시도까지 이뤄진 데 비해 촛불로 탄생했다는 이 정부에서 다문화에 관한 한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물론 남북관계나 부동산 문제 등 해결해야 할 큰 사안들이 워낙 펑펑 터지니까 어쩔 수 없이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것일 수도 있지만.” 한 지원단체 실무자의 말이다. 사실일까. 

문재인 정부 정책기획위원회가 지난해 7월 발표한 문재인 정부 국정운영 5개년계획 마스터플랜에서 다문화와 관련된 정책을 찾아봤다. 언급된 곳은 두 군데다. 100대 과제 중 51번 ‘교육의 희망사다리 복원’ 항목에 다문화·탈북 학생을 위한 범부처 종합대책 수립을 2018년, 올해까지 한다고 되어 있지만 현재까지 소식이 없다. 65번 여가부 과제로 ‘다양한 가족의 안정적인 삶 지원 및 사회적 차별 해소’에서 한부모가족 지원정책과 함께 “‘결혼 이민자 자립 지원 패키지’ 및 ‘다문화 자녀 성장지원 프로그램’ 운영으로 다문화가족의 사회적 자립 도모”를 내용으로 하는 다문화가족 지원책을 마련하겠다고 하지만 언제까지 하겠다는 이야기가 없다. 

한 전문가가 전하는 자신의 경험담이다. “기재부의 고위 관료와 토론을 한 적이 있다. 그분이 하신 말씀이 보통사람의 정서를 대변하는 것으로 본다. 제가 이민자에 대한 취업지원은 일반인들에 대한 서비스와 맞지 않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정부가 관심을 기울여야 하지 않으냐고 말하니 ‘한국사람도 취직이 안 되지 않느냐’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제가 ‘이 사람들도 한국사람들이다’라고 답하니 ‘그래도 본적이 다르잖아요’라고 말하더라. 본적이라는 것이 우리에게는 없어졌지만 그분의 정서에는 남아있는 것이다.” 

               

비슷한 불만이 예맨 난민사태 때 터져 나왔다. 정부의 다문화 우대정책 때문에 결국 유럽에서처럼 갈등으로 귀결될 난민 대량유입사태를 불러왔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다문화 2세 청년들의 지표상 ‘실종’의 의미는 무엇일까. 다문화 우대정책의 성공으로 그들은 한국 사회의 구성원으로 완전히 동화된 것일까. 박 대표의 전망에 따르면 현재 중학생 청소년까지 성장한 ‘다문화 2세’ 중심세력이 동화되지 않고 자신의 집단 정체성을 드러낼 시점은 몇 년 남지 않았다. 한국 사회는 과연 그 ‘커밍아웃’을 기꺼이 맞을 준비가 되어 있을까.

경향신문 2018.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