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못 사는 미등록 이주 노동자들…"감염자 생겨 외국인 혐오 정서 발생할까 숨죽여"

이주민 사역자들 "정부 대책 마련 시급"…용산나눔의집·길찾는교회, 후원 캠페인 시작


마스크 수급 안정을 위해 정부가 3월 6일부터 '5부제'를 시행했다. 이 제도에 따르면 신분증이 있는 이들만 마스크를 구매할 수 있다. 정부가 '불법 체류자'로 분류하는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들은 무방비 상태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마스크 수급 안정을 위해 정부가 3월 6일부터 '5부제'를 시행했다. 이 제도에 따르면 신분증이 있는 이들만 마스크를 구매할 수 있다. 정부가 '불법 체류자'로 분류하는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들은 무방비 상태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전국적으로 마스크 품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정부는 수급을 조절하고자 3월 9일부터 '마스크 5부제'를 시행했다. 1주일에 한 번씩 인당 2장만 구매할 수 있으며, 신분증을 지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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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도 마스크 5부제 대상이지만 '외국인 등록증'이 있는 이들에게만 해당하는 얘기다. 신분증이 없는 미등록 이주 노동자들은 마스크를 살 길이 없다. 감염병 확산 예방을 위해서는 누구나 마스크를 착용하는 게 필수적이지만,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이들은 질병 위협에 그대로 노출되고 있다.

이주민들과 함께하는 목회자들은, 이들이 마스크 구매는 물론이고 경기 위축에 따른 실직, 본국 가족들의 걱정, 외국인 혐오 정서로 다중고를 겪고 있다고 전했다.

김포이주민센터 최영일 목사는 이주민들의 마스크 구매가 어렵고, 코로나19 여파가 이주민 커뮤니티까지 미칠까 봐 염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 목사는 3월 11일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한국 상황이 심각하다고 하니 본국 가족들 걱정이 크다. 비자가 있는 이들 가운데도 본국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경우가 있다. 공장 가동이 중단되면 생계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불안감이 더 큰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대구이주민센터 고경수 목사도 "이주민들이 본국 뉴스에서도 한국 이야기가 나오니까 불안감이 더 크다. 중국에서 온 이주민 한 명은 집에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확산세가 큰 대구·경북이지만, 다행히 공장 가동은 중단되지 않았고 이주민 중 확진자가 발생하지 않아 한숨 돌리고 있다고 전했다. 고 목사는 대구 지역 기독교인들이 연대해 모금 캠페인을 벌이고 구호 활동도 진행 중이라고 했다.

포천이주자노동센터 김달성 목사는 12일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주변 노동자들을 둘러보니 대부분 면 마스크를 빨아서 재사용하고 있다. 공장에서 일할 때 쓰라고 지급한 마스크를 외출할 때도 사용한다. 일부는 마스크가 부족하다 보니 기숙사나 숙소에서 아예 외출하지 않는 방식으로 이 시기를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포천 지역 미등록 노동자를 1만 명 규모로 추산하며, 이들에 대한 정부 대책이 없으면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등록 이주 노동자는 감염이 의심되거나 증상이 생겨도 신분이 드러나면 강제 출국당할 수 있기 때문에 검사받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며 "코로나가 창궐하는 이때 마스크를 구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정책적으로 배려하는 것은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말했다.

안산이주민센터 박천응 목사는 코로나19 초기부터 중국 동포를 향한 혐오 정서를 확산한 언론들에 분통을 터뜨렸다. 박 목사는 "서울 대림동이나 안산 등을 마치 지역 감염 근원지인 것처럼 퍼뜨렸는데, 이 지역들은 오랫동안 청정 상태를 유지해 왔다(안산에서는 3월 7일 첫 확진자가 발생했다 - 기자 주). 물론 중국인이 많다는 점에서 합리적 의심을 할 수 있겠지만 근거도 없이 몰아간 것은 매우 유감스럽다. 그 후 중국 동포들은 혹시 자신들이 코로나19 감염 원인으로 몰릴 수 있다고 생각해 예민한 상태다"고 말했다.

박 목사는 코로나19 여파로 경기가 위축되면서 이주 노동자들도 타격을 입고 있다고 했다. "점심에도 용역 회사에 다녀왔는데 텅텅 비어 있었다. 우리는 지금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먹을 게 떨어진 이들에게 식량을 제공하고 있다. 그런데 이거 받으러 올 차비가 없어서 걸어오는 사람이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법무부는 1월 31일 코로나19 의심 증상으로 검진받는 경우,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구 출입국관리소)에 이들의 신상을 통보할 의무를 면제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르면 보건소 등 공공 의료 기관에서 검진받는 사람이 미등록자 신분임을 인지해도, 법무부에 이를 알릴 의무가 사라진다. 법무부는 3월 11일부터 온라인 신고만으로도 출국할 수 있는 절차를 마련했다고도 설명했다. 정부는 이 점을 적극 홍보하겠다고 했으나, 이주민 사역 목회자들은 널리 알려지지 않은 게 현실이라고 입을 모았다.

아산이주노동자센터 우삼열 목사는 "이런 정책이 있어도 이주 노동자들이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정보 전달이 되도록 더 홍보에 힘쓰고 코로나19 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적극 안내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 목사는 "현재 등록증이 있는 노동자도 5부제로 마스크를 구매하는 게 불가능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 근무시간에 어떻게 나가서 마스크를 살 수 있겠나. 1개로 1주일 버티는 사람을 적지 않게 보고 있다. 불안감이 커지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3월 13일 오후 시민들이 마스크 입고 시간에 맞춰 약국 앞에 길게 줄을 서 있다. 이주민 상황을 잘 알고 있는 목회자들은, 건강과 생계, 혐오 문제로 힘들어하는 이주 노동자들을 위한 정책적 배려와 관심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3월 13일 오후 시민들이 마스크 입고 시간에 맞춰 약국 앞에 길게 줄을 서 있다. 이주민 상황을 잘 알고 있는 목회자들은, 건강과 생계, 혐오 문제로 힘들어하는 이주 노동자들을 위한 정책적 배려와 관심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미등록 이주민들을 실질적으로 돕기 위한 캠페인도 곳곳에서 시작되고 있다. 용산나눔의집과 길찾는교회(자캐오 사제)는 3월 13일부터 4월 2일까지 '등록·미등록 이주민들의 위생 용품 지원 모금 및 후원' 캠페인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수급 부족과 5부제 시행 등으로 마스크를 구하기 어려운 미등록 이주민들에게 마스크를 지원하겠다는 취지다.

자캐오 사제는 12일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미등록 노동자에게 지원할 필터 교체형 면 마스크나 일반 마스크를 이주 노동자 커뮤니티에 지급할 예정이라고 했다. 길찾는교회에서 마중물로 50만 원을 내놓았고, 시민들에게 후원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자캐오 사제는 최근 국내에서 코로나19 치료를 받다 사망한 몽골인 사례 때문에, 자칫 이번 사례가 외국인 노동자 전반에 대한 혐오로 이어질까 봐 긴장하고 우려하는 상태라고 말했다. 그는 "질병에 내·외국인 구분이 없다"며 "우리 사회가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 뼈저리게 느낀 것이지만, 한 명이라도 코로나19에 걸리면 사회 전체가 몸살을 앓게 된다. 미등록 이주자들 역시 우리와 함께 사는 이들이다. 그들이 안전해야 우리도 안전하다는 마음으로 도와 달라"고 요청했다.

후원하고자 하는 사람은 후원금을 계좌로 보내거나 여분의 마스크 또는 손 소독제를 용산나눔의집(서울 용산구 한강대로98길 6, 은성빌딩 2층)으로 보내면 된다. 후원금과 물품은 용산나눔의집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이주민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뉴스앤조이  2020.0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