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정책에 ‘다양화’가 없다
현재 천편일률 획일화…지역특성 맞는 조례제정 시급
  • 다문화사회 정착을 위한 각종 정책이 겉돌고 있다. 글로벌 시대를 맞아 이주자들의 권익과 다양한 문화를 수용하는 정책 마련이 시급하다. 정부는 결혼 이주여성이 급증하기 시작한 2005년부터 이주자의 사회통합을 핵심내용으로 하는 다문화사회 정책을 추진해 2008년 다문화가족지원법을 제정했다. 이에 발맞춰 지방자치단체들도 다문화가정 지원조례를 제정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자체의 다문화 관련 조례 대다수가 결혼이주여성에 대한 시혜 성격을 담은 전시 행정사업이라고 지적한다. 이주자들의 다양한 문화와 전통을 계승하기보다 한국사회에 동화시키려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인종차별 금지·차별방지법 마련을

    한국은 이미 다문화사회의 문턱을 넘어선지 오래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1년 1월1일 기준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귀화자, 외국인 자녀, 장기체류 외국인의 수는 126만5006명이다. 이는 전체 인구의 2.5%에 해당하는 수치다. 

    전문가들은 건강한 다문화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인종차별 등을 금지하는 차별방지법이 제정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나라는 수년전부터 시민단체와 일부 국회의원을 중심으로 차별방지법 도입을 추진해왔으나 현재까지 법 제정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다양한 인종차별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외국인 근로자나 결혼이주여성에 대한 인종 차별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최근 우즈베키스탄 출신의 귀화인 쿠르바노바 클리브리다 씨는 에이즈를 옮길지 모른다는 이유 등으로 사우나 출입을 거부당하자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2009년 성공회대 연구교수 보노짓 후세인 씨도 버스 안에서 ‘더러워, 냄새 난다’는 인종차별적 발언을 들었다. 

    이처럼 우리사회 곳곳에서는 인종차별 문제가 빈번히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를 처벌할 수 있는 법이 마련되지 않아 한국에 대한 나쁜 이미지만 만들고 있는 실정이다.

    생색내기 지원책 벗어나 보편적복지로

    지자체들의 다문화 관련 조례를 살펴보면 대대수가 ‘다문화 가정 지원 조례’다. 조례  내용은 우리사회에 빠르게 통합되도록 돕고 자녀출산과 양육, 교육을 지원하는 내용이다. 지자체들이 시행하는 다문화 정책들이 획일적이라는 지적을 받는 이유다. 

    출산과 양육 지원은 이주민을 포함해 모든 이들에게 혜택을 보장해야 하는 보편적 복지정책이다. 지자체들이 다문화가정 지원정책을 따로 분류해 생색내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지원 조례가 결혼이주여성을 한국사회에 동화시키는 위주로 제정되고 집행된다는 문제점도 있다. 결혼이주여성의 국적이나 그들의 성장환경을 무시한 채 우리나라 입장에서 이들을 교육하고 동화시킨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문제점이 발생한 이유에 대해 관 주도의 경쟁적 다문화가족 지원정책을 꼽는다.

    부산시 금정구의회의 다문화가족 지원 조례는 조금 다르다. 이 조례는 지역 내에 거주하는 이주민들끼리 고유의 문화와 전통을 이어갈 수 있도록 공동체 형성 등을 지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부산 시민단체들은 조례 5조9항에 명시된 ‘이주민네트워크 지원사업’이 다문화 정체성을 유지, 보존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다문화정책은 각 지역 이주자의 국가, 문화 등이 다르기 때문에 지역 실정에 맞게 수립돼야 한다. 이 때문에 조례 제정과 정책 추진에 있어 지자체의 역할과 기능이 강조된다. 

    캐나다, 독일 등 주요 선진국 다문화 정책의 공통점도 중앙정부에서 일괄적으로 정책을 개발해 지방정부로 내려 보내는 것이 아닌 지자체들이 지역별 특성에 맞게 정책을 마련하고 추진한다는 점이다. 

    자국의 전통의상을 입은 다문화 강사가 한 초등학교 교실에서 학생들에게 다문화 시범수업을 하고 있다.
    이주청소년 15% 입학거부 당해
    주요 거점 지역별로 특별반 운영 확대 필요

    이주청소년의 15%가 학교로부터 입학거부를 당하는 등 교육권 침해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지난해 말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하면서 초·중학교는 부모가 미등록 이주노동자라 해도 이들의 자녀를 무조건 받아주라고 명시했다. 이는 인도적, 사회 평화적 차원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이 어떤 차별도 받지 않고 교육을 받게 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일선 학교들은 부족한 준비와 학습부진이 예상된다며 이주노동자 자녀의 입학 신청을 거부하고 있다.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외국 태생 자녀(이하 중도입국 자녀), 이주노동자 자녀 등 186명 중 28명이 입학 거부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전국적으로 KSL(한국어 지도 특별반) 과정이 있는 학교가 전무해 한국어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정규 교과과정을 따라가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대다수의 이주노동자의 자녀들은 학년을 낮춰서 진학하거나 진학을 아예 포기하고 있다.

    외국에서 살다 들어온 중도입국 자녀의 경우 절반이 ‘탈학교’ 상태다. 교과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학령기 중도입국 자녀는 총 4849명이다. 이 중 정규학교에 다니는 이들은 초등학생 805명, 중학생 647명, 고등학생 1080명으로 총 2532명이다. 중도입국 자녀 2명 중 1명만 정규교육을 받고 있는 셈이다.

    교과부 관계자는 “외국에서 태어나 뒤늦게 한국에 왔기 때문에 한국말을 잘 못하고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해마다 중도입국 자녀들이 증가하는 추세여서 이들을 위한 교육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일선 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는 교사들은 특별학급 확대가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예비학교 개념의 특별반 운영이 지역별로 필요하다고 말한다. 교사가 수업을 진행하면서 현실적으로 한국어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이주노동자 자녀들까지 교육하는 것은 어렵다는 것이다.

    현재 특별반이 운영되는 곳은 전국적으로 8개 학교뿐이다. 안산 원곡동, 인천 남동공단, 성남 가구공단 등 이주노동자나 외국인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 학교에 특별반 운영이 이뤄져야 한다. 각 지역 교육청이 이들 주요 거점에 외국인 자녀를 위한 교육시스템을 구축해야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시스템 구축과 함께 다문화 교육의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다문화사회에서는 인종·민족·종교 등의 차별로 새로운 소외계층이 형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전문가는 “다문화가족 자녀들이 성장과정에서 이러한 소외현상으로 발생하는 ‘격차의 누적’ 때문에 더 큰 사회 문제에 직면할 수 있다”며 “다문화가족 자녀의 수가 점차 증가하고 있어 다문화사회를 대비한 교육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외국 사례는?
    편견을 넘어 가족으로…

    프랑스, 독일 등 유럽과 북미 국가의 다문화 정책·실천 내용은 근현대 이민사의 산물이다. 국가와 지역적 특수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들 나라는 차별방지법 등을 지원해 인종차별, 소수계층의 지원을 펼쳐 이주자들의 권익 증진에 나서고 있다.

    프랑스_ 차별퇴치법 제정 모든 차별 금지

    똘레랑스(관용)는 다문화정책을 비롯한 모든 프랑스 정책의 기본 원칙이다. 프랑스 사회는 이 정신에 입각해 다문화사회에 대한 포용적인 사회체제를 갖췄다는 평을 받고 있다. 

    프랑스는 2001년 ‘차별퇴치에 관한 법’을 제정하고 고용을 포함한 모든 차별에 대해 시민단체가 피해자를 대신해 고발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차별퇴치법은 차별에 대한 사실증명의 책임을 가해자에게 부과해 자신의 행위가 차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하도록 규정했다.

    2006년에는 ‘기회균등법’을 제정하고 기회균등처를 설립해 이주자를 중심으로 한 소외지역 거주자들에 대한 차별을 철폐했다. 이법은 교육과 고용에 있어 기회균등을 강화한 것이다.

    독일_ 지자체들 모국어 교육에도 신경 써

    독일은 2005년 이민법을 제정해 국적 및 난민, 이민, 망명 등 이주와 관련된 문제를 체계적으로 다룰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 

    이민법 제정으로 이주자들에게 사회통합프로그램의 참여를 의무화했고 이주자 통합정책에 대한 연방정부의 책임을 분명하게 규정했다. 이민법은 연방정부의 권한과 역할, 의무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예산지원을 명시했다.

    이주자들은 독일에 도착하자마자 초기 오리엔테이션을 받아 일상생활에 필요한 기본정보를 수록한 안내서를 제공받는다. 

    또한 이주자들을 대상으로 최대 3년까지 개별상담을 통해 개인의 욕구에 적합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한다. 각 주는 기초상담실과 청소년 이주상담소를 운영한다. 특히 독일 전역에서 366개의 이주상담소가 운영돼 낯선 환경에 잘 적응하도록 돕는다.

    지자체도 다문화가족을 위한 행정부서를 따로 설치하고 다문화가정 자녀를 대상으로 다양한 언어 교육 프로그램을 시행한다. 이들 부서는 다문화 환경 조성과 이주민 아동의 다언어 습득능력 개발에 중점을 둬 독일어 교육 뿐 아니라 모국어 교육에도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

    미국_ 다양한 문화 정체성 유지에 초점

    ‘샐러드 볼’은 미국의 다문화 정책을 나타내는 단어다. 이는 갖가지 채소들이 제 특성을 유지한 채로 섞이는 그릇에 비유한 개념이다. 다양한 문화적 특성을 존중해 이주자들의 문화적 정체성을 살리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미국은 그들의 정신을 주입하는 동화주의 기반으로 다양한 문화를 수용하는 정책을 펼쳤다. 이는 소위 ‘문화 용광로’ 정책이라 불렸으며 각 문화에 대한 정체성 부재, 획일화된 동화주의란 비판을 받았다.

    1960년대 이후 인권운동을 시작으로 다문화주의에 대한 논의가 시작돼 다양한 소수집단의 적응과 문화존중을 강조하는 다문화주의를 채택했다.

    미국은 다문화정책에 있어 NGO(비정부기구)와 공조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정부가 통합에 대한 노력을 주도하지만 주정부와 민간과 공조해 지침과 예산을 제공한다.

    시민권자의 미국 역사 지식과 소양을 증진시키기 위해 시민 소양시험을 시행한다. 생활수준이 낮은 소외계층 및 소수민족의 학생 등을 위해 NCLB법을 제정해 다문화교육 관련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캐나다_ 세계 최초 다문화주의 국시 제정

    현재 캐나다는 200개 이상의 민족, 500만명 이상의 이주자가 거주하는 이민 국가이다. 캐나다는 이민에 대해 개방적이고 평등한 정책을 추진해 다른 서구 국가와는 달리 심각한 민족갈등을 겪지 않고 있다. 

    캐나다는 1971년 세계 최초로 다문화주의를 국가의 공식 정책으로 채택했다. 영국·프랑스계 주민의 전통적인 갈등해소와 다문화 현실을 반영한 정치적인 노력의 일환이었다. 인종차별을 비롯해 각종 차별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사회구성원 모두를 위한 캐나다 조성에 힘쓰고 있으며 반차별 정책을 연방정부와 각 주정부가 시행한다.

    문화유산부를 설치하고 20여개의 산하단체와 25개의 지역본부를 두고 다문화주의 정책을 펼치도록 독려한다. 각 주별로 소수집단 언어와 문화를 적극 존중하는 다양한 정책을 펼친다.

    다양한 문화유산 유지·보존 프로그램을 펼치며 연방정부, 주정부, 민간단체 및 소수민족커뮤니티간의 상호 협력과 교류를 강화하고 있다.
           - 세계일보 2011년 10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