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랑캐꽃- 외국인 노동자들의 삶에 관한 기록

1. 왜 쓰는가?

외국인 100만 시대의 주역, 외국인 노동자들!
그들의 삶에 관한 기록이 부끄럽게도 우리나라엔 없다.

그들이 어떻게 느끼고, 어떻게 생각하며, 어떻게 행동하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하지만 이게 사실이다. 한글 배우기, 컴퓨터 학습, 한국문화체험 등 관제 행사에 동원된 그들의 어색한 미소 뒤에는 인간으로서의 절실한 욕구와 좌절과 희망과 희로애락이 숨어 들끓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선 리얼한 생활현장 이야기가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외국인 노동자들이 맞닥뜨린 상황부터 알고, 그들이 이 상황을 어떻게 풀어나가고 있는지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그 생활 이야기의 양이 많아야 한다. 그 다음에야 사회 문화인류학적인 고찰이 필요하리라.

우리나라에서 외국인 노동자가 가장 많을 뿐 아니라(합법체류자만 2만 4천명)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악명높은 경기도 화성 시에서 거의 유일하게 외국인노동자들에게 무료 법률 상담을 해주고 있는 나는 그들의 삶에 관하여 기록할 의무를 갖고 매주 두 편 이상의 이야기를 계속 쓸 작정이다. 언젠가는 이 기록이 유용히 쓰일 날이 오기를 기다리며.

2. 왜 '오랑캐꽃'인가?

외국인 노동자들!
3D 업종 등에서 일할 사람이 없기에, 한국 쪽에서 절실히 필요해서 불렀으면서도,

"너희들 나라에 가만히 엎드려 있지, 한국에 왜 왔냐?"
는 식으로 불청객 취급을 당하고,

"걔네들은 돈 좀 더 받기 위하여 뭐든지 한다니까!"
하는 식의 모멸어린 시선을 받으며,

"도무지 보고 배운 것이 없어 질서를 지키지 않는다구!"
하는 식의 근거 없는 모함에 시달린다.

의식 있는 소수를 제외한 많은 한국 대중에게 영락없이 오랑캐 취급을 당하는 외국인 노동자들. 하지만 삶의 속내를 알고 보면 오랑캐꽃처럼 어여쁘기에 이 제목을 붙인다.

오랑캐꽃1-초원의 소리

몽골인 나란도르즈와 샤카.
회사 경영이 어려워지자 사장은 두 달 전에 잠적했고 그저께부터는 같이 일하던 한국인 노동자마저 나오지 않는다. 전기도 끊겼고, 누군가 밥솥도 가져가 버렸다. 두 사람은 쫄쫄 굶은 채로 어둠의 기숙사에서 밤을 지새고 나를 찾아왔다.

"월급 몇 달치 못받았다구요?"
"두 달이요."

밀린 월급은 못받더라도, 직장을 옮겨야 일을 하고 일을 해야 밥을 먹을 텐데. 하지만 직장을 옮기는 게 장난이 아니다.

외국인 노동자는 한국 사람처럼 자유로운 몸이 아니다. 직장을 옮기려면 노동부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노동부의 허락을 받으려면 월급 못받은 것을 확실히 증명해야 하는데 사장도 잠적하고 한국인 직원도 사라졌으니 어디 가서 이를 증명해보이나?

일단 경인지방 노동청 수원 지청에 임금체불에 관한 진정서를 접수시키고, 접수증을 떼어가지고 동수원에 있는 고용지원센터 외국인 고용팀에 찾아가서 사정을 해보았다.

"이 접수증을 보시고 직장 이동을 허락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글쎄, 접수증만 가지고서는 안된다니까요."

진정서를 접수시켰다는 사실만 가지고서는 직장이동이 불가능하다는 판에 박힌 소리만 듣고 고용지원센터를 나왔다.

하릴없이 발안으로 돌아오는데 운전석 옆에 앉은 샤카가 부시럭거리더니 숄더백에서 CD를 꺼내 CD 플레이어에 꽂는다.

갑자기 중늙은이가 내뿜는 소리가 차안에 쩌렁쩌렁 울린다. 우리나라 소리(唱) 비슷한데 훨씬 높은 고음이다. 그 옛날 장정들은 전쟁터로 나가고 마을에는 늙은이와 아녀자만 남았을 때 광활한 초원 야트막한 언덕에서 이 노래를 불렀을 것이다. 전투에서 이기고 돌아오라고, 건강한 모습으로 재회하자고.

현실은 너무나 냉혹하지만 노래 때문에 배고픔도 분함도 사라지는 것 같다. 샤카는 창밖을 내다보지만 나란도르즈는 가만히 눈을 감고 있다. 소리는 되풀이된다. 전투에서 이기고 돌아오라고, 건강한 모습으로 재회하자고.

필자약력
1948년 충북 청주 출생
1971년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1976-1984년 도서출판 청년사 대표
2007년 4월 목사 안수 받음
2007년 6월부터 현재까지 화성외국인노동자센터 대표

저서로는 10대 노동자들의 수기를 모은 <비바람 속에 피어난 꽃>(1979년), 우리 속담을 재미난 이야기로 풀이한 <나를 살려준 속담>(1997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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