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의 코시안, 한글교육·자녀상담 상설기관 절실

‘대충’배운 우리말 체계적 학습 원해
보육비 전전긍긍…일자리 배려 시급
실태살펴 엄마·아이 함께 보듬어야


6일 오전 10시30분 광주시 서구 농성동 한 소아정신과. 필리핀 엄마 에그린(가명·33)과 한국인 아빠(38) 사이에서 태어난 성주(5·가명)가 치료를 받고 있었다. 석달 전 성주는 또래보다 말이 늦어 ‘발달성 언어장애’라는 진단을 받았고, 일주일에 한번씩 병원을 찾고 있다.

성주의 엄마는 전남 무안에서 살다 2001년 12월 남편의 폭력을 피해 광주로 왔다. 성주는 한창 말을 배울 시기에 엄마한테 언어 자극을 받지 못했다. 처음엔 잔뜩 움츠린 표정으로 “안 해” “줘” 등 묻는 말에만 짧게 반응하다 최근 언어 치료사와 눈을 맞추기 시작했다. 성주는 이날 종이 겹치기 놀이를 그만하자는 말에, “더 해”라고 반응을 보여 엄마를 기쁘게 했다.

농촌에 코시안들이 늘고 있다. 이들은 동남아 출신 여성들이 10여년 전부터 한국 농촌에 시집와 낳은 아이들로, 우리 사회의 새로운 소수자다.

농촌에 사는 외국인 며느리는 전국적으로 대략 1만여명 정도로 추정된다. 전남도가 지난 3월 조사한 결과, 도내 외국인 주부는 1953명으로, 중국인(592명)이 30.3%으로 가장 많았고, 필리핀인(585명), 일본인(511명), 타이인(61명), 베트남인(52명), 대만인(25명), 몽골인(11명)이 그 뒤를 따랐다. 도별 농촌지역 외국인 주부 수는 전남이 가장 많고 △강원 1299명 △충남 976명(천안·예산 제외) △경북 844명 △충북 741명으로 각각 조사됐다. 경기·경남·전북 등에는 통계치가 아예 없다.

농촌의 코시안은 최근 급증하는 추세다. 전남 장흥군 ㅈ초등학교 1~6학년 166명 가운데 7가구 14명이 외국인 엄마와 살 정도로 비율이 점차 늘고 있다.

농촌의 코시안들은 산업연수생으로 온 동남아 출신 아빠와 한국인 엄마가 이룬 ‘도시 코시안’과는 환경이 다르다. 특히 중국이나 일본보다 문화적 차이가 큰 필리핀·베트남·타이 출신 여성의 자녀들은 외국인 엄마의 영향으로 말이 늦게 터지고 학습이 부진한 경우가 많다. 일부는 비정상적인 가정 환경 때문에 정서장애 증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필리핀 엄마(38)와 사는 연수(6·가명) 역시 말이 더디고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 증상을 보였다. 지난해 7월 지능검사에서 연수는 동작성 지능은 또래와 비슷했으나, 언어성 지능은 훨씬 낮게 나왔다. 소아청소년병원 최정인 정신과 전문의는 “아빠의 음주 폭행과 부모의 이혼 등 가정환경에서 상처를 받은데다, 엄마와 제대로 대화를 못해 나타난 증상”이라고 말했다. 연수는 최근 “형아가 때려서 여기가 다쳤어”라며 주말에 지냈던 일을 얘기할 정도가 됐다.

“하진(6살·가명)이는 한국 말 잘해요. 나는 힘들어요. 한국 말과 영어 같이 해요. 딸이 학교 가면 공부 힘들어요.” 전남 함평에서 구멍가게를 운영하며 사는 필리핀 출신 넬리더 코르테스(41)는 ‘반토막 한국어’로 자녀 교육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그는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가 가게에 오면 일부러 말을 건다”며 “딸의 책을 함께 읽으며 공부하지만 힘든다”고 말했다.

9년 째 강원도 횡성에서 사는 필리핀 출신 아델파 빌라도리스(38)는 “초등학교 딸이 받아쓰기를 가져오면 아빠에게 부탁한다”며 “딸의 공부를 도와주지 못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말이 서툴러 학교를 방문해 교사와 자녀 문제를 상의하는 것도 꺼린다. 전남 장흥의 필리핀 출신 로리타비 와드와찬(42)은 “학교에서 보낸 안내장을 이해 못해 실수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언어문제뿐이 아니다. 농촌 코시안들은 피부색이 다른 엄마 때문에 마음의 상처도 받는다. 아이들은 사람들의 눈길을 통해 이를 눈치챈다. 로리타비의 딸 의진(7·가명·초등1)이는 엄마가 운동회에 다녀간 뒤, “친구가 ‘니네 엄마 아프리카지?’라고 놀린다”고 말했다. 한 필리핀 엄마(38)는 “큰아들(7·초등1)이 ‘엄마 때문에 준비물을 제대로 못 챙겨 가 벌을 받았다’며 발로 차는 등 무시할 때 마음이 아프다”고 털어놓았다.

농촌의 외국인 주부들은 자녀들의 상급학교 진학이 가장 큰 걱정거리다. 필리핀 여성 데라라 롤미타(46·경산시 용성면)도 “딸(6)이 초등학교 진학 전 한글을 배우도록 하고 싶으나 마땅한 교육기관이 없다”며 “아이들의 장래를 위해 낮에는 농사를 짓고, 밤에는 식당에서 일하며 돈을 벌고 있다”고 말했다. 광주 대구/정대하 박영률 기자 daeh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