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없는 아이들·4]합법적 삶이 힘든 한국

가족, 함께 살 길이 없다


▲ 외국인 근로자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도내 한 도시에서 만난 무국적 아이들. 한국의 국적법상 아이들은 고아가 돼야만 합법적으로 한국에서 살 수 있어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최재훈기자
韓 국적 얻기위해 버려지고
 가짜 입양·호적매매 불법도
 아동권리 법제정은 '게걸음'

스리랑카인 A(여)씨의 사례는 이들의 절망적인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공장에서 일하던 A씨는 같은 스리랑카 출신 직장동료를 만나 아이를 가졌다.

하지만 아이 아버지는 불법체류자라 아이를 책임질 형편이 못됐다. A씨는 임신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하던 공장에서 해고됐고, 다른 공장에도 취직하지 못했다.

불법체류자까지 된 A씨는 국내 한 미혼모쉼터에 들어가 아이를 낳았다. 하지만 자신의 신분 때문에 국적도 없이 성장하게 될 아이의 미래가 걱정됐다. 고아가 되면 한국 국적을 취득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에 생후 6개월된 아이를 경기도의 한 아동일시보호소에 맡겼다.

자신이 다시 직장을 잡고 돈을 벌 동안만 아이를 맡기겠다고 생각했지만, 얼마 뒤 그는 출입국 단속에 걸려 본국으로 추방당했고 아이를 그대로 둔 채 한국을 떠나야 했다. 한국에 돌아오려고 노력했지만, 불법체류 이력 때문에 한국으로 돌아오기는 쉽지 않았다. 그 사이 아이는 일시보호소에서 보육원으로 옮겨져 엄마도 없이 홀로 두해를 넘겼다.

실제로 외국인 아이들이 버려지는 사례는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서울의 주사랑공동체에 설치된 베이비박스에는 지난 6월 기준으로 10여명의 외국인 아기가 버려졌다. 지난해 1월, 경상남도 통영에서는 외국인으로 추정되는 아기 시신이 비닐봉지에 싸여 발견돼 충격을 주었다.

코시안의 집 김영임 원장은 "불법체류자들 사이에서 낳은 아이들이 부모로부터 버림을 받는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최근들어 한국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많아지면서 경제적인 어려움과 더불어 국적과 같은 복잡한 법적문제도 그 원인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버려지는 아이들이 많아지면서 지구촌사랑나눔이라는 시민단체는 아예 이주여성들을 위한 베이비박스를 포함해 이주여성 위기지원센터를 만들기로 했다. 어쩔 수 없이 부모에게 버려진 무국적 아동들이 또다시 버림받는 상황을 막기 위해서다.

이를 구상한 김해성 목사는 "버려진 외국인 아이들은 보호소를 통해 일반 보육원에 입소해도 입양조차 쉽지 않다. 한국 아이가 아니라는 이유로 또다시 버림받고 있다"고 말했다.

고아가 됐기 때문에 한국 국적을 취득할 수 있지만, 아이들은 결국 평생 고아라는 딱지와 외국인 아이라는 꼬리표로 인해 또다시 고통을 받아야 하는 셈이다.

사실상 합법적으로 한국에서 살 수 있는 길이 막힌 이들의 현실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 한국 호적을 사고파는 상황까지 발생하고 있는 것. 지난해 11월부터 최근까지 브로커를 통해 본국으로 아이를 보내다 적발된 베트남인 불법체류자들은 한국인 호적에 아이를 올려주는 대가로 1천여만원이 넘는 돈을 줬다.

베트남인 이주여성과 결혼한 한국인 가정들이 자신의 호적에 의뢰받은 아이를 올려주면 아이는 자동으로 한국국적을 취득하게 되는데 이는 명백한 불법행위다.

무국적 아동이 합법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살 수 있는 방법이 영아유기, 가짜 입양과 같은 불법 밖에 없는데도 정부는 끊임없이 무국적 아동을 부정하는 완고한 태도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이 땅에 수십년동안 무국적·미등록 아이들이 살아가는 동안, 단 한차례도 이들을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이는 법을 만들지 않았다.

이때문에 이주민을 돕는 시민사회는 이제라도 무국적·미등록 아동에 대한 정확한 실태조사와 우리 사회 안에서 이들이 합법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실제로 올해 4월 국회에서는 '이주아동 권리보장 기본법 제정안'을 위한 공청회를 열고, 미등록 아동들의 기본권을 위해 한걸음 나아갔지만, 여전히 국회 주변부만 맴돌며 본회의 안건으로 상정되지 못하고 있다.

스리랑카 미혼모를 도왔던 이주민단체 관계자는 "불법체류자의 자녀라도 이 땅에서 태어난 아동에게 부모와 함께 살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했다면, 부모가 천륜을 저버리는 행위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우리나라가 1991년 비준한 UN아동권리협약은 '아동은 출생 후 즉시 등록돼야 하며 이름과 국적을 가져야 하고, 가능한 부모가 누구인지 알고 부모에 의해 양육받아야 한다'고 명시했지만 무국적 아동들은 부모와 함께 살 수 없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2014.9.26 경인일보 /윤재준·최재훈·공지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