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자체가 불법인 ‘미등록 이주아동’, 유령 같은 삶 살아야

불법체류자 신분도 대물림...이주아동권리보장 기본법 통과될까

존재자체가 불법인 미등록 이주아동, 태어날 때부터 사회적 권리 박탈당해

장미의 엄마 로솔린 씨는 마이크를 잡자마자 눈물을 쏟아냈다. 장미와는 다르게 로솔린 씨는 아직 한국어가 서툴다. 긴 흐느낌 사이로 한국어가 더듬더듬 섞여든다. “5월 27일 우리 필리핀 가야 합니다. 만약에 방법이 있으면 도와주세요. 너무 감사합니다. 부탁합니다” 열두 살 난 딸 장미가 맞은편에서 엄마의 우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쾌활했던 초등학생 소녀는 어느새 존재자체가 불법인 미등록 이주아동이 돼 있었다.

법무부에 따르면, 2013년 2월 기준 19세 미만의 미등록 이주아동의 규모는 6천여 명이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숫자를 포함하면 약 1~2만 명가량으로 추산된다. 존재가 지워진 미등록 이주아동들은 교육, 의료 등 사회적 권리를 박탈당한 채 살아가야만 한다. 이주노동희망센터는 2월부터 두 달간, 한국에서 자녀를 양육하는 미등록 이주노동자 30명에 대한 심층인터뷰를 진행했다. 거의 모든 가정에서 ‘출산’에서부터 생각지 못한 전쟁 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12일 오후, 국가인권위원회 8층에서 열린 ‘심층면접을 통해 본 미등록이주아동 실태 연구 간담회’에서 안은주 이주노동희망센터 국제협력 팀장은 “미등록여성이주노동자가 한국에서 임신, 출산을 경험하는 것은 엄청난 불안과 스트레스 요인이었다”며 “임신기간 내내 심리적 부담과 아이의 미래에 대한 불안정성으로 많은 여성이 미숙아를 출산하거나 자연분만이 아닌 수술로 아이를 출산하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아이 29명 중 4명은 미숙아로 태어났다. 출산을 경험한 여성 29명 중 20명은 제왕절개 수술을 받아야 했다.

보험혜택을 받지 못해 수술비로만 천만 원이 넘는 돈을 지불해야 한다. 한 미등록 노동자는 미숙아를 출산하며 1,900만 원에 달하는 수술비용을 청구받았다. 제왕절개 수술비는 대개 1천만 원이 훌쩍 넘었다. 자연분만도 150~200만 원의 병원비를 내야 했다. 한국 국적자와 비교해 제왕절개 수술비는 최대 15배, 자연분만 병원비는 평균 10배의 비용을 더 내야 한다.

한상훈 태국쉼터 상담실장은 지난해 5월, 아찔한 경험을 했다. 태국 사원의 한 스님으로부터 걸려온 한 통의 전화가 발단이 됐다. 임신한 태국의 미등록 이주여성의 출산일이 다가오는데 도움을 받을 데가 없다는 요지의 연락이었다. 아이 아빠는 임신소식을 알고 도망을 쳤고, 임신 후 일을 하지 못하게 된 여성은 사원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한상훈 실장은 병원을 알아보기 시작했고, 수도권 인근에서는 서울의료원만 저렴한 비용으로 출산할 수 있다는 정보를 알게 됐다. 그는 “출산일 즈음 서울의료원을 방문하기로 하고 그때까지는 동네 병원을 다니기로 했다. 그런데 출산예정일 3주 전 새벽에 전화가 걸려왔다. 양수가 터져 빨리 와 달라는 연락이었다”고 설명했다. 119대원을 불러 평소 다니던 병원으로 산모를 호송했다. 병원에 산모의 어려운 사정을 얘기하니 ‘우리 병원은 없는 사람들 도와주는 병원이 아니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한 실장은 급한 마음에 산모를 자신의 차에 태우고 수원의 성 빈센트병원으로 향했다. 종교를 앞세운 병원이라 어쩌면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 때문이었다. 그 곳에서 제왕절개 수술로 아이를 출산했다. 미숙아로 태어난 아기는 울지도 못한 채 불규칙한 호흡만 내뱉었다. 제왕절개 수술비와 아이 치료비까지, 8백만 원 넘는 돈이 청구됐다. 산모가 가지고 있던 전 재산은 100만 원 내외였다. 병원 사회복지과 및 이주민 의료지원 활동가들의 도움과 지자체 지원금을 받아 60만 원 선에서 간신히 병원비를 해결했다. 아이가 태어났지만 엄마는 아이를 키울 여력이 안됐다. 결국 170만 원을 들여 남의 손으로 아이를 태국으로 돌려보내야 했다.

불법체류자 신분도 대물림되는 현실
‘이주아동권리보장 기본법’ 국회서 통과될까


아이를 낳아 기르는 과정에서도 여러 악전고투를 경험한다. 출생신고부터가 그렇다. 대사관마다 규정이 천차만별이지만, 출생신고 과정에서 목돈이 들거나 절차가 까다로워 많은 부모들이 아이의 출생신고를 포기한 채 살아간다. 맞벌이를 해야 해서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야 하지만 미등록 이주아동이 다닐 수 있는 어린이집은 거의 없다. 인터뷰 참가자 중 10명은 이미 어린이집에서 거절당한 경험이 있었다. 운이 좋아야 통합어린이집에 겨우 아이를 맡길 수 있다. 민간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보육비를 감당하기 힘들다.

가장 힘들 때는 아이가 아플 때다. 보험 적용을 받지 못해, 아이가 감기만 걸려도 병원비가 몇만 원을 훌쩍 넘는다. 주거환경은 회사 기숙사나 방 한 칸짜리 월세 방이 대다수다. 단속에 걸려 바로 추방당할 경우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없기에, 보증금 없는 방을 구하려다보니 월세가 올라간다. 초등학교 입학을 하고 싶어도 학교에서 거부를 하면 손을 쓸 방법이 없다. 소라미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현행 법 제도에는 의무교육 대상에 이주아동이 명시돼 있지 않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려 해도 학교장 재량에 따라 학교 입학을 거부할 수 있다. 입학 과정에서도 외국인등록증 등을 제시하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비자 서류를 제출하지 못해 대학 진학이 불가하다. 사실상 공교육 접근권에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이의 미래를 설계할 여유도 없다. 안은주 팀장은 “아이의 장래에 대한 계획을 세워 놓고 있다고 대답한 참여자는 거의 없었다. 그냥 부모들처럼 공장에서 일 안했으면 좋겠다는 정도의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불법체류자라는 신분은 아이에게도 고스란히 대물림된다. 2000년 초부터 외국인 노동자의 쉼터인 ‘코시안의 집’을 운영하고 있는 김영임 원장은 15년이 지난 현재도 미등록 이주아동의 처우는 변한 것이 없다며 입을 열었다.

처음 일을 시작하면서 만난 9살 난 몽골 남자 아이는 강제 추방된 부모를 떠나보내고 한동안 홀로 한국에 남아있어야 했다. 1년을 삼촌 집에 얹혀살다 못 견디고 몽골로 떠나게 됐다. 김 원장은 “그 아이가 훌쩍 자라 노동비자를 받아 한국으로 왔다. 사귀던 여자 친구도 유학비자로 같이 왔다. 하지만 이들은 다시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됐다”고 설명했다. 이삿짐센터에서 열심히 일하며 두 아이를 낳았다. 하지만 둘째 아이는 심장수술을 받아야 했다. 수술비로만 천만 원이 필요했다. 김 원장은 “병원비가 비싸더라도 의료기술이 뛰어난 한국 병원에서 치료를 받기를 원했다. 결국 부부는 3살밖에 안 된 첫째 아이의 양육을 포기하고 지난 5월 1일 아이를 본국으로 돌려보냈다”고 말했다.

아이를 키우고 있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바라는 것은 한 가지다. 아이들이 한국에서 안전하게 자랄 수 있도록 체류비자를 발급해 달라는 것이다. 한국정부는 1991년 비준한 유엔아동권리협약에 따라 ‘관할권 내 모든 아동의 권리를 차별 없이 보장해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2006년 ‘부모의 체류자격과 관계없이 모든 이주노동자 자녀에게 부모와 함께 지내며 양육받을 권리와 교육받을 권리를 보장하고, 양육비와 의료비를 지원하는 사회복지체제를 구축해야 한다’고 권고한 바 있다.

그동안 23개의 시민사회단체는 ‘이주아동권리보장 기본법’을 국회에서 통과시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지난해 12월 해당 법안이 국회에 발의됐고 현재는 법제사법위원회에 상정돼 있다. 해당 법안은 이주아동들에 대한 차별금지, 신분 보장, 교육권, 건강 및 복지권 등을 보장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소라미 변호사는 “이번 19대 국회뿐 아니라 지난 18대 국회 당시에도 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논의가 되지 않은 채 임기가 끝나며 법안이 자동 폐기됐다”며 “이번에도 법안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내년은 총선이 있기 때문에 올해 6월 임시국회가 마지막 기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2015.5.13 민중언론 참세상